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용서하라는 말이 상처를 없던 일로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갚는 일을 내 손에서 놓는 것이지요. 아직 마음이 거기까지 못 갔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자리에서 읽으시면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4-15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2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이런 때
아래는 실제 이용자가 적은 글이 아닙니다. 응답을 다듬으려고 저희가 직접 써 둔 예시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분노와 원망이 끓어오르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복수의 상상이 떠오를 때마다 짧은 기도로 끊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주께 맡깁니다"라고 선언하기.
배우자가 과거에 준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자꾸 들춥니다. 화해한 일도 다시 꺼내며 그 사람을 찌르고, 그러는 제 자신도 지쳐 갑니다.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지난 일을 무기로 꺼내려는 충동이 들 때 멈추고, 정말 풀어야 할 마음이 있다면 비난이 아니라 "그때 이런 게 아팠어"라고 솔직히 나누기.
형제(혹은 가까운 친척)와 크게 틀어진 뒤로 몇 년째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냅니다. 명절에도 외면하며, 먼저 손 내미는 쪽이 지는 것 같아 버팁니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4
"지는 것" 같아도 먼저, 짧은 안부 문자 한 통이나 연락으로 화해의 문을 열어 보기.
묵상 12편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마음에 걸리는 한 편만 천천히 읽어 보세요.
- 용서는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입니다.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그 빚을 더 이상 내가 받지 않고 주께 넘겨드린다는 선언이지요. 한 번에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마 18:22), 다시 결단하십시오.
- 용서하지 못한 마음은 상대가 아니라 나를 가둡니다. 내가 받은 용서의 깊이를 먼저 헤아릴 때, 그 사람의 빚이 비로소 작아 보입니다.
- 용서는 그 일이 괜찮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갚는 일을 내 손에서 하나님 손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 용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부터 정직하게 아뢰십시오. 용서한 척하는 것보다 못하겠다고 말하는 편이 주께는 훨씬 가깝습니다.
-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골 3:13). 기준이 내 감정이 아니라 받은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대개 감정보다 결심이 먼저 옵니다.
- 용서했는데도 기억이 다시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올라올 때마다 다시 내려놓는 것이 용서의 실제 모습입니다.
-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22). 횟수를 세지 말라는 뜻이지, 상처를 가볍게 여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셨습니다(롬 12:19). 놓으라는 말은 정의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재판석에서 내려오라는 말입니다.
- 미움을 품고 있으면 그 사람이 내 안에 계속 머물게 됩니다. 용서는 그 사람을 위한 일이기 전에 그를 내보내는 일입니다.
- 용서와 신뢰는 다릅니다. 용서는 오늘 할 수 있어도 신뢰는 시간이 걸리고, 다시 위험한 자리로 돌아가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면서 사람에게는 닫아 두고 있지 않은지 보십시오. 주기도문은 그 둘을 한 문장에 묶어 두었습니다(마 6:12).
- 용서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정상입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여러 번 놓아야 합니다.
회개 기도문 6편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셔도 되고, 중간에 자기 말로 바꾸셔도 됩니다.
- 주님, 제가 받은 용서의 깊이를 잊은 채 그 사람의 빚만 헤아렸습니다. 그 빚을 오늘 주께 넘겨드립니다. 저를 자유롭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상처가 아직 살아 있어 놓아주기가 버겁습니다. 제 힘으로 안 되니, 용서할 마음까지 주께서 주옵소서. 한 번 더 결단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아직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주 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억지로 덮지 말고 주께서 다루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갚고 싶은 마음을 주께 넘겨 드립니다. 판단은 주님의 것인 줄 압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제가 받은 용서의 크기를 잊어서 남을 재고 있었습니다. 그 크기를 다시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기억이 다시 올라올 때마다 다시 내려놓게 하소서. 지치지 않게 붙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해볼 것
- 그 사람 생각이 올라올 때 오늘은 거기서 한 번 멈추기.
- 복수의 상상이 들 때마다 짧게 기도로 끊기.
- 용서가 안 된다는 사실 자체를 오늘 기도로 아뢰기.
- 그 사람에게 하고 싶던 말을 적은 뒤 보내지 않고 덮어 두기.
- 갚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주께 맡깁니다' 한마디로 멈추기.
- 그 일로 내가 잃은 것을 적고, 더 잃지 않기 위해 오늘 할 일을 하나 정하기.
자주 묻는 질문
용서하면 그 일이 없던 것이 되나요?
아닙니다. 용서는 잘못을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갚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은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지요. 잘못은 여전히 잘못으로 남습니다.
용서했는데 다시 미워집니다.
용서는 한 번의 사건이라기보다 반복되는 결정에 가깝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2절의 일흔 번씩 일곱 번은 횟수를 세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미워졌다면 다시 결정하시면 됩니다.
용서하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나야 하나요?
용서와 관계 회복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계속 해를 입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는 것이 옳고, 그것은 용서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안전이 먼저입니다.
여기 있는 글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입니다.
지금 마음에 걸린 것을 직접 적으시면 그 이야기에 맞는 말씀과 기도문을 찾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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