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l · 주제별 말씀과 기도문

수치심과 자기혐오

죄책감은 내가 한 일을 보게 하고, 수치심은 나라는 사람 자체를 못 견디게 만듭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여기 있는 말씀은 나를 더 몰아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뭐라고 부르시는지 다시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편 10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이런 때

아래는 실제 이용자가 적은 글이 아닙니다. 응답을 다듬으려고 저희가 직접 써 둔 예시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혐오스럽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조차 부끄러워 차라리 숨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나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로마서 8:1 "정죄함이 없나니"로 답하고, 숨지 말고 그 자리에서 짧게 기도하기.

저는 사랑받을 자격도, 구원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 같습니다. 제가 한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저를 받아 주실 리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나는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은혜는 자격 없는 자를 위한 선물"이라고 바꿔 고백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마음 그대로 주께 아뢰기.

과거에 한 일(낙태, 이혼, 누군가에게 준 상처 등)에 대한 죄책감이 평생의 짐처럼 저를 짓누릅니다. 용서받았다고 믿고 싶지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편 103:12

그 죄책감이 떠오를 때 "주님이 이미 멀리 옮기셨다"고 선언하고,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면 신뢰하는 목회자나 상담자에게 그 짐을 나누기.

제 자신이 쓸모없고 못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늘 부족하다고 자책하고, 제 안에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하루 한 번, 거울을 보며 "나는 주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주님의 것"이라고 소리 내어 말하기.

부모로서 자녀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말로는 믿음을 가르쳤지만 제 삶은 그렇지 못했고, 아이가 그런 저를 보고 자란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6-7

아이 앞에서 완벽한 척하기보다, 오늘 함께 짧게 기도하거나 "엄마(아빠)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해"라고 솔직한 신앙의 모습 보이기.

같은 죄를 고백하고 또 고백하는 일이 반복되니, 회개마저 형식적으로 느껴지고 지칩니다. 진정으로 변화되고 싶은데 제자리인 것 같아 무력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6

"또 같은 죄"라며 자책하는 대신 "그래도 또 주께 나왔다"고 격려하고, 변화를 내 의지가 아니라 그분의 신실하심에 맡기기.

묵상 12편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마음에 걸리는 한 편만 천천히 읽어 보세요.

회개 기도문 6편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셔도 되고, 중간에 자기 말로 바꾸셔도 됩니다.

오늘 해볼 것

자주 묻는 질문

죄책감과 수치심은 다른가요?

죄책감은 내가 한 일을 향하고 수치심은 나라는 사람 전체를 향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로 이끌지만, 자기를 미워하는 마음은 대개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습니다.

용서받은 것을 아는데도 계속 자책합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가 벌어지는 일은 흔합니다. 요한일서 3장 20절은 마음이 나를 책망할 때에도 하나님이 마음보다 크시다고 하지요. 내 판결보다 그분의 판결이 나중이고 최종입니다.

지난 일이 자꾸 떠올라 괴롭습니다.

떠오르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떠오를 때마다 재판을 다시 여는 대신 이미 끝난 판결을 확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볼 수 있습니다. 오래 반복되고 일상이 무너진다면 목회자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는 편이 낫습니다.

여기 있는 글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입니다.
지금 마음에 걸린 것을 직접 적으시면 그 이야기에 맞는 말씀과 기도문을 찾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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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은 개역한글판(1961)이며 저작재산권이 만료된 퍼블릭도메인입니다. 묵상·기도문·적용은 Veil이 직접 작성한 글로, 개혁주의 신학을 기초로 하되 어느 특정 교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현재 목회자 검수를 받는 중이며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상담이나 의료 행위를 대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