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과 음란
이 자리는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못 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혼자 싸우다 지치지요. 여기 있는 말씀과 기도는 정죄하려고 모아 둔 것이 아니라, 그 싸움을 주님 앞으로 옮겨 놓으려고 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6:18-19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데살로니가전서 4:3-4
이런 때
아래는 실제 이용자가 적은 글이 아닙니다. 응답을 다듬으려고 저희가 직접 써 둔 예시입니다.
음란물을 다시 보고 말았습니다.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무너졌고,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넘어지게 한 통로 하나(앱·계정·링크)를 오늘 차단하고, 신뢰할 동성 한 명에게 솔직히 털어놓기.
배우자가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고 음욕을 품었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이미 선을 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마음이 끌리는 그 대상과의 불필요한 접촉·연락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배우자에게 작은 사랑을 먼저 표현하기.
과거의 성적인 죄가 자꾸 떠올라 괴롭습니다. 용서받았다고 머리로는 알지만, 그때의 기억과 수치심이 여전히 저를 짓누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25
그 기억이 떠오를 때 "주님이 이미 도말하셨다"라고 소리 내어 선포하고 다른 일로 시선 옮기기.
습관처럼 이성을 외모로 평가하고 음란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길에서, 화면에서,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욥기 31:1
시선이 머물려 할 때 즉시 눈을 돌리고 속으로 "주님, 저 사람을 축복합니다"라고 기도로 바꾸기.
데이팅 앱이나 온라인에서 가벼운 만남과 자극을 찾아 헤맸습니다. 외로움을 채우려 했지만 만남 뒤에는 더 큰 공허함만 남았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예레미야 2:13
외로움이 밀려올 때 앱을 켜는 대신, 신뢰하는 사람에게 연락하거나 짧게 기도로 마음을 주께 가져가기.
배우자 외의 사람과 부적절한 관계로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짓눌려 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이켜야 할지 막막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죄책감에 숨지 말고, 그 관계를 끊는 구체적 결단을 내리며, 신뢰할 수 있는 목회자나 전문 상담자에게 도움을 구하기.
묵상 12편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마음에 걸리는 한 편만 천천히 읽어 보세요.
- 정욕은 갈증이 아니라 우상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친밀함을 거짓 형상으로 미리 훔치려는 시도이지요. 의지로 이기려 하기보다 도망치고(딤후 2:22), 그 자리를 그리스도로 채우십시오. 회복은 결심이 아니라 새 사랑입니다.
- 넘어졌다고 정죄의 어둠으로 숨지 마십시오. 죄책감은 또 다른 도피처가 될 뿐입니다. 빛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회복의 시작입니다. 오늘의 실패를 정직하게 아뢰는 그 입술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 주님은 행동만이 아니라 바라보는 마음까지 다루셨습니다(마 5:28). 엄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죄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건지시려는 것입니다.
- 정욕은 사람을 사물로 바꾸어 놓습니다.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고전 6:19).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이 경계는 지킬 만한 값이 있습니다.
-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다시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넘어진 횟수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지가 문제입니다(잠 24:16).
- 혼자 싸우려 하면 대개 집니다. 부끄러움이 클수록 숨게 되고, 숨을수록 힘을 잃습니다.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두는 것이 의지보다 강합니다.
- 시험을 받을 때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된다고 했습니다(약 1:14). 밖에서 온 것처럼 보여도 문을 연 자리는 대개 안에 있습니다.
- 눈으로 언약을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욥 31:1). 무너진 다음에 싸우는 것보다, 무엇을 볼지 미리 정해 두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 도망하라고 했습니다(고전 6:18). 맞서 이기라고 하지 않으신 자리입니다. 자리를 뜨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다른 것으로 달래 온 것은 아닌지 보십시오. 정욕은 종종 외로움이 입은 옷입니다.
- 은밀한 죄일수록 은밀한 회개로 끝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혼자만 아는 결심은 대개 혼자만 아는 실패로 끝납니다.
-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습니다(잠 4:23). 지킨다는 말에는 문을 여닫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회개 기도문 6편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셔도 되고, 중간에 자기 말로 바꾸셔도 됩니다.
- 주님, 제 몸이 성령의 전인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죄책감으로 다시 숨지 않게 하시고, 보혈로 씻으신 그 자리를 주님으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눈과 마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거짓 친밀함을 좇던 갈망을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바꾸어 주시고, 도망쳐야 할 때 도망칠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눈과 마음이 가는 길을 주께서 아십니다. 감추고 싶은 그 자리를 빛 앞에 내어놓습니다. 저를 정결하게 하시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충동이 올 때 도망할 길을 예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길을 보게 하시고, 보고도 서 있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또 무너진 저를 정죄가 아니라 은혜로 일으켜 주소서. 죄책감에 주저앉는 것도 주께 나아가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인 줄 압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이 싸움을 혼자 감당하려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해볼 것
- 넘어지게 하는 통로 하나를 오늘 차단·삭제하기.
- 유혹의 순간에 연락할 동성 동역자 한 명 정하기.
- 무너지기 쉬운 시간대를 하나 적고, 그 시간에 다른 할 일을 미리 정해 두기.
- 손이 먼저 가는 경로를 오늘 하나만 끊어 두기.
-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기도해 달라'고만 말해 두기.
- 잠들기 전 화면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기.
자주 묻는 질문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합니다. 회개가 소용이 있나요?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약속은 몇 번째 회개인지를 묻지 않습니다. 다만 되풀이되는 자리에서는 결심만으로 끊기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혼자 싸우지 않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이 문제를 사람에게 말해야 하나요?
야고보서 5장 16절은 서로 죄를 고백하라고 합니다. 아무에게나 하라는 뜻은 아니고, 소문내지 않고 같이 기도해 줄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말할 곳이 하나도 없을 때 이 죄는 가장 오래갑니다.
유혹을 이기는 실제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싸우는 지점을 앞으로 당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9절의 강한 표현은 유혹의 순간이 아니라 그 앞의 통로를 끊으라는 말이지요. 언제 어디서 무너지는지 며칠만 적어 보면 대개 정해진 길목 몇 개가 보입니다.
여기 있는 글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입니다.
지금 마음에 걸린 것을 직접 적으시면 그 이야기에 맞는 말씀과 기도문을 찾아 드립니다.
가입 없이 쓸 수 있고, 적은 내용은 서버로 보내지 않습니다.
다른 주제
성경 본문은 개역한글판(1961)이며 저작재산권이 만료된 퍼블릭도메인입니다. 묵상·기도문·적용은 Veil이 직접 작성한 글로, 개혁주의 신학을 기초로 하되 어느 특정 교단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현재 목회자 검수를 받는 중이며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상담이나 의료 행위를 대신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