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과 슬픔
애통하는 자리는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위로받아야 할 자리입니다. 여기 있는 말씀은 슬픔을 빨리 정리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세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이런 때
아래는 실제 이용자가 적은 글이 아닙니다. 응답을 다듬으려고 저희가 직접 써 둔 예시입니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어요. 제가 지은 죄가 아닌데도 너무 슬프고 무섭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오늘 울고 싶은 만큼 울고, 그 눈물을 주님께 그대로 가져가기.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매일 웁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더 아프기만 합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그분의 빈자리를 기억하며, 남겨진 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전하기.
임신 중 아기를 잃었습니다. 아무도 제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가지면 돼"라는 말만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오늘 울고 싶은 만큼 울고, 그 눈물을 주님께 그대로 가져가기.
가장 친한 친구가 사고로 갑자기 떠났습니다. 작별 인사도 못 하고 보내서 자꾸만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그분의 빈자리를 기억하며, 남겨진 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전하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었는데,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무너집니다. 주변은 다 잊으라 합니다.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시편 147:3
오늘 울고 싶은 만큼 울고, 그 눈물을 주님께 그대로 가져가기.
치매 걸린 어머니를 5년간 돌보다 돌아가셨습니다. 긴 병간호 끝에 맞은 이별이라 슬픔과 해방감이 뒤섞여 괴롭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그분의 빈자리를 기억하며, 남겨진 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전하기.
묵상 12편
한 번에 다 읽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마음에 걸리는 한 편만 천천히 읽어 보세요.
- 슬픔은 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상심한 자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눈물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받으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신 약속은, 슬픔이 축복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슬픔 가운데 주님이 가장 가까이 계시다는 뜻입니다.
- 죽음과 이별은 피조물의 한계 앞에서 우리가 무력함을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선언하셨습니다. 지금의 아픔이 끝이 아님을, 영원한 작별이 아님을 그 약속이 붙듭니다. 오늘은 그저 주님 품에 안겨 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5:4). 슬픔을 빨리 지우라고 하지 않으시고, 위로를 약속하셨습니다.
-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그 상처를 싸매신다고 했습니다(시 147:3). 싸맨다는 말에는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 슬픔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습니다. 남들이 정해 준 속도로 회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말씀은 우는 것을 허락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5). 다시 살리실 것을 아시면서도 우셨습니다. 슬픔은 믿음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시편의 많은 부분이 탄식입니다. 하나님은 정돈된 찬양만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 슬퍼하는 자에게 재 대신 화관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사 61:3). 슬픔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얹어 주십니다.
- 오늘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큰 결정은 슬픔이 조금 물러난 뒤로 미루어 두십시오.
- 곁에 있어 주는 사람에게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하는 일이 있습니다.
- 기억이 문득 찾아와 무너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뒤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사랑했다는 표시입니다.
기도문 6편
그대로 소리 내어 읽으셔도 되고, 중간에 자기 말로 바꾸셔도 됩니다.
- 주님, 사랑하는 이를 잃고 마음이 무너집니다. 우시는 주님께서 제 눈물을 아시오니, 이 아픔을 홀로 견디게 하지 마옵소서. 상심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 주님, 그 빈자리에 함께 계셔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이별의 슬픔 속에 부활의 소망을 심어 주시고, 영원한 작별이 아님을 믿게 하소서. 오늘 하루, 주님의 위로만으로 버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슬픔이 가시지 않습니다. 서둘러 괜찮아지려 하지 않고, 이 마음 그대로 주 앞에 있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상한 마음을 싸매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그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날입니다. 이 침묵을 들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주님, 이 슬픔을 혼자 지지 않게 하시고, 곁에 있어 줄 한 사람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해볼 것
- 오늘 울고 싶은 만큼 울고, 그 눈물을 주님께 그대로 가져가기.
- 그분의 빈자리를 기억하며, 남겨진 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전하기.
- 오늘은 회복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잘 쉬기.
- 마음에 있는 말을 정리하지 말고 그대로 적어 두기.
- 곁에 있어 줄 한 사람에게 연락하기.
- 울고 싶을 때 참지 않기.
자주 묻는 질문
슬픔이 오래가는 것이 믿음이 없어서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지요. 슬픔에 기한을 정해 두신 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제 그만 털라고 합니다.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아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애도는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고,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곁에 적을 뿐입니다. 재촉하지 않는 한 사람만 있어도 큰 차이가 납니다.
이런 마음으로 예배에 가도 되나요?
됩니다. 시편의 상당수가 울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웃는 얼굴을 준비해서 가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기 있는 글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입니다.
지금 마음에 걸린 것을 직접 적으시면 그 이야기에 맞는 말씀과 기도문을 찾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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